‘쩐(보조금 유치) 각축장’은 교육감뿐 아니라 국회의원도 연출
중앙 관할 지역교부금 제도 없애고
지역 의회에서 필요 예산을 짜도록 제도 전환해야
4,000명 여론조사가 국민의 뜻이라고 선전하는 조선일보
조작 가능 아전인수 여론조사 결과를 국민의 뜻이라 우기면 안 돼
조선일보가 「국민 절반 부정 평가, 실패로 판명난 교육감 직선제」란 표제의 사설을 냈다. 교육감 민선제를 폐지하고, 개방형 공모제,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 시⸱도지사 임명 방식 같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조선, 2026.5.11.) 조선일보가 제시한 후자의 방법들은 교육감 선거를 관(官)에서 주관하겠다는 뜻이다.
직선제를 폐지해야 하는 근거로 조선일보가 든 이유는, ① 여론조사를 해보니, 직선제 긍정 평가 답변이 10%밖에 안 되더라는 것, ② 교육의 중립성 확보를 명분으로 정당 공천을 배제했으나, 실제로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후보들이 정당과 유착 관계 속에서 후보를 선출하더라는 것, ③ 진영별 단일화가 중요해지면서 경선 단계부터 선거인단 대리 등록이나 경선 참가비 대납 의혹 등이 제기되는 등 난장판이 됐다는 것, ④ 검증 부재로 후보 자질 문제가 발생하고, 선거 예비 후보 4명 중 1명은 전과가 있고, 전과 종류도 경찰관 폭행부터 뇌물, 횡령까지 다양하다는 점, ⑤ 교육이 76조 원으로, 중앙 정부 전체 예산(728조 원)의 10%를 넘어섰고, 학생은 줄어드는데, 교부금만 늘어나니, 후보마다 현금 살포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근거로서, 조선일보 사설은, 여론조사를 들었고, “국민 절반이 지방 교육 자치에 부정 평가”를 하고 있다고 예단했다. 이 황당한 주장의 근거는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의 결과이다.
이 같은 류의 여론조사는 다소간 의도한 결과를 유도하도록 문항 자체를 교묘하게 구성한 것으로 회자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근원적 문제는 4,000명 대상 1회 여론조사에 근거하여, 조선일보는 맹랑하게도 국민 절반이 교육감 민선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라 예단한 것이다. 또 그 결론에 근거하여, 근 20년의 역사를 지닌 교육감 민선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조선일보의 이 같은 비약은 교육감 직선제 여부를 넘어 우리 정치사회가 보편적으로 갖는 허술한 구석을 반증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꼼수가 개재한다. 첫째, 국민투표가 아니라 여론조사를 빌미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 둘째, 직선제를 없애고, 관료가 중심이 되는 임명제로 바꾸려는 저의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한겨레신문도 큰 틀에서 보면 조선일보와 맥을 같이 한다. 비전 경쟁 아닌 ‘쩐의 각축장’이 된 교육감 선거」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고, 같은 날 사설에서는 「깜깜이·진흙탕 교육감 선거, 개선책 마련해야」라는 제하에 “교육감 민선제를 수정해야”, “교육감 직선제의 부작용을 보완하고, 교육자치의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놓고 사회적 공론화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이 그러하다.(한겨레, 2026.5.12.)
한겨레가 조선일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자체장처럼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육감도 직선제”로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각론에서 한겨레는 조선일보와 같은 기조에 있다. 첫째, 직선제를 이대로 두고 “교육감 선거를 방치”해서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고 한 점, 둘째, 개선방안 제시에서, 직선제를 부정하고, 그 대신 임명제나 간선제로, 시민을 다소간에 관의 통제하에 두고자 한 것이 그러하다.
한겨레가 제시한 방안은, ① 선관위가 관리하는 방안, ② 정당 추천제(정당이 자당 소속이 아닌 교육감 후보를 추천), ③ 교육장 직선제(교육지원청의 장인 교육장을 현행 임명제에서 직선제로 바꾸고, 그중에서 교육감을 선출, 이 경우 교육감은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가 된다) 등이다.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함께 지적한 부작용은 주로 예산 관련한 점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는 “한 해 95조 원의 예산을 운용하며, 교직원 인사권과 지역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교육 소통령’을 깜깜이·진흙탕 선거로 뽑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고, 조선일보는, ”교육 76조 원으로, 중앙 정부 전체 예산(728조 원)의 10%를 넘어섰고, 학생은 줄어드는데 교부금만 늘어나니, 후보마다 현금 살포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고 한 것이 그러하다.
여기서 교육감 민선제를 말살하기 위해 두 가지 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첫째, 여론조사, 둘째, ‘쩐(보조금 유치)’의 각축장 운운하는 것이다.
교육감 민선제 폐지는, 근자에 회자하는 ‘쩐의 각축장’과 무관하게, 윤 정부 출범 이후 윤석열이 먼저 들고나온 것이다. 지역단체장 선거 시 교육감을 동반 후보(런닝메이트)로 임명제로 바꾸자는 발상도 그때 벌써 나왔다. 그때는, 여론조사라는 매개도 없이, 대놓고 교육감 민선제는 좋지 못한 것이니, 단체장 뽑을 때 그 동반자(러닝메이트)로 교육감을 지명하자고 제안했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던 윤석열의 비민주적 관료주의의 뒤를 이어, 지금 ‘여론’을 명분으로 조선일보가 다시 교육감 임명제를 주창하고 나섰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노리는 세력은 대개 내각제를 지향한다. 내각제도 민중의 정치적 입김을 배제하는 데 불가결한 도구이다. 국민 민중이 직접 뽑는 대통령의 권한을 다소간 국회에서 뽑는 총리에게로 넘기려 하기 때문이다.
민중의 입을 막는 장치로서, 교육감 민선제 폐지와 내각제 지향 이외에도, 행정 권력을 가능한 한 집중시키려 하는 행정통합이 있다. 이것은 현 이재명 정부 및 민주당에서 추진하는 것이지만, 이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 간단없이 밀어부쳤던 것이다. 여야, 국힘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국민 민중의 입을 막고 그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는 길을 막으려 데 혈안이 되었다.
여기에도 단골로 끼는 것이 ‘여론조사’이다. 경남도지사 민주당측 후보 김경수, 이재명 대통령 등은 주민투표, 국민투표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여론조사를 통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이 같은 행태에서는, 조선일보, 국힘당뿐 아니라, 현 정부 및 민주당도 마찬가지이다.
김경수는 부산⸱경남 등에서의 행정통합에 주민투표가 필요 없다는 의견을 냈다. 시간과 돈이 드는 주민투표는 생략하고, 의회 동의와 여론조사로 대신하자는 것이었다. 민주당도, 대구⸱경복 행정통합에 주민투표가 필요 없다고, 국회 내 국힘당 누군가에게 말했다고 한다.
주민투표 없이 행정통합 하자 할 것이 아니라, 중앙 관할 재정권을 지역으로 넘겨야 한다. 단체장이나 교육감이 아니라 지역의회에서 균형 있게 각 분야에 예산을 배분하도록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단체장, 국회의원, 교육감 등이 중앙에서 예산 따오겠다고 ‘쩐의 각축장’을 벌일 필요가 없어진다. ‘쩐의 각축장’은 민선제 탓이 아니라, 재정의 지나친 중앙통제에서 비롯되는 질병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중앙통제의 강화를 선호한다. 행정통합 지향성이 그러하다. 최근 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 사건 관련 검찰의 조작수사 기소에 대해 특검법안을 들고 나왔다가, 국힘당 등 야당의 반발에 부딪쳤다. 검찰의 조작수사 기소에 대한 특검을 두고, 대통령의 ‘셀프(자기)’ 면피용, 권력을 사유화한다는 등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핵심은 대통령이 아니라 공권력 검찰의 부패에 있다. 검찰이 스스로 자정능력이 없는 마당에, 조작수사 기소에 대해 특검을 운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그것도 긴급하게 처리되어야 하고 연기되어서는 안 된다. 공권력의 오남용을 잠시라도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반발이 일자, 이재명은 특검법 처리의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나섰다. 여론 수렴과 충분한 숙의를 거치자는 것이다. 그런데 ‘숙의와 여론 수렴’이란, 그럴듯해 보이지만, 둘 다 국민을 들러리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여론 수렴이란 결정권을 국민에게 넘기지 않고, 관(官)에서 결정을 주도하겠다는 뜻이고, 또 숙의의 주문은 지금 가진 판단의 가치를 다소간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에 국민의 판단이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른바 민주정치에서, 국민은, 의견수렴의 대상이 아니라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숙고가 아니라 행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특검법이 문제가 되고 혼선이 생긴다면, 연기할 것이 아니라, 모든 권력의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물어 바로 결정하면 된다. 국민에게 숙고하라고 하는 것은 여론조사라는 빌미로 국민의 뜻을 왜곡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몰아가려 하는 위정자들의 관행과 맥을 같이 한다.
더구나, 아무리 숙고를 거듭하여 결정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동하는 데는 충분하다.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 고전기 아테네의 고명한 변론가 데모스테네스는 행동하지 않고 토론, 숙고에만 골몰한 아테네인을 다음과 같이 질책했다.
“대화나 연설만으로 그(마케도니아왕 필리포스)를 이길 수가 없어요. ··· 필리포스가 계속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진격하며,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모험에 다 걸 때, 우리는 게으르게 앉아 있거든요. 어떤 이들은 권리에 대해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듣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아주 당연한 이치로서, 제 소견에, 실천이 말을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데모스테네스』, 10.2~3)
“여러분에게 최선의 정책을 조언하는 것이 어려운 일 같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여러분 모두가 이미 그것을 터득하고 계신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실천으로 유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떤 결정이 지지를 받아 통과되어도, 지지를 받기 전보다 더 실천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닙니다.”(같은 책, 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