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147)“검사가 다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정성호(법무장관)와 대통령 이재명이 놓치고 있는 것세상 어디에도 다 나쁜 사람만 있는 곳은 없다
|
![]() ▲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 교수 부산포커스(300) |
다소간 검찰을 비호하는 것으로 회자하는 정성호(법무부장관)가 언젠가 국회(2026.1.12. 법사위)에 출석하여, “검찰 전체가 다 나쁘다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검찰 구성원 모두가 범죄자라는 시각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등 발언을 했다. 그런데 신년기자자회견(2026, 함께 이루는 대전환, 모두 누리는 대도약)에서 대통령 이재명도 그 같은 취지의 발언을 복창했다. “보완수사를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검찰 조직 전체를 일률적으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러하다.
정성호와 이재명의 이 같은 발언은 같이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두사람의 말을 들으면, 마치 검사 중에 안 나쁜 사람이 없고 다 나빠서 검찰개혁이 필요한 것처럼 이해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 검찰개혁은 검찰이 나 나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검찰뿐 아니라 앞으로 있어야 할 법원 판사에 대한 사법개혁도 판사들이 다 나쁘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다 나쁜 사람만 있는 곳은 없다. 민주정치는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공권력의 일탈을 국민 민중이 감시, 견제, 처벌하는 것이다. 관료가 관료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민중이 하는 것이 민주정치이다. 그것은 대다수 검사, 판사가 잘한다 해도, 1%, 아니 만에 하나라도 권력의 일탈을 감시하는 것이다. 하나 둘을 그냥 방치하는 순간, 그것이 순식간에 퍼져 50%, 99%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싹은 애초에 근절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성호와 이재명은 핵심을 벗어난 괜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재명 발언의 취지를 간추리면, 첫째, 피해자 보호가 중요하지 누구의 권력을 뺏는 게 목표가 아니다. (검찰개혁의) 진짜 최종 목표는 국민들의 인권 보호, 권리 구제이고, 억울한 범죄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게 가해자를 처벌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 둘째, 검찰 권력을 다 뺏으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 셋째, 모든 검사가 다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재명의 주장은 법무부장관 정성호의 발언과 궤를 같이 한다.
넷째,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 ‘예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롭고 남용 가능성 없는 안전한 검찰수사제도를 만들자”고 한 것, 다섯째, 10월까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 국회, 정부, 또 국민들이 모두 나서서 토론을 해서 그 ‘예외’의 안전장치를 만들자고 한 것이다. 10월까지라고 했다. 이 발언은 2026년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 한 것이니, 이미 7달여 지난 일이다.
그러나 검찰보완수사권 폐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 시점에도, 법안의 취지를 거스르는 ‘예외’를 위한 추가 보완 입법을 위한 시도는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 시도는 이재명의 의사와 무관하게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 중에 있는 것이다. 또 이재명 자신도, 1월 기자회견 당시의 발언을 놓고 보면, 여전히 10월 이전 ‘예외’의 안전장치에 대한 미련을 버렸을 것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세간에서 회자하듯이, 당 대표가 누가 되는가에 따라, 이재명은 이 같은 자신의 기대가 실현 혹은 좌절될 수 있는 기로가 될 것이라 가늠할 수도 있겠다.
위 이재명 발언의 취지를 간추리면, 크게 두 가지 주제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인권 보호를 위해, 또 검찰의 권력을 ‘다’ 뺏으면 뒷감당이 안 되므로, 또 검사라고 나쁜 검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도 집단지성의 존재이므로, 검찰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래서 검찰 수사권 폐지에 ‘예외’를 두어야 하며, 그것은 10월까지 주어진 시간에 국회, 정부, 국민의 ‘토론’을 빌미로 보완 가능하다고 본다는 점이다.
이재명의 이 같은 취지의 발언은 하나같이 정합성을 결여한다. 위 첫째, 검찰개혁의 목표는 검찰의 권력을 뺏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 구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러하다. 검찰에 의해 짓밟힌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검찰의 기소 및 수사권을 서로 분리하려고 하는 것인데, 검찰 권력 뺏는 것이 어떻게 인권 보호를 방해하는 것이 되나? 오히려 그 권력을 뺏어야 인권이 보호되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재명의 셈법은 상식을 거스르는 것이다.
검찰이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재명 인식은, 자칫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정부기관의 권력을 두고, 오히려 국민 민중을 보호할 것이라고 하는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기인한다. 이 같은 봉건적 가부장주의적 인식은 비민주적인 것이며, 이것은 검찰 권력뿐 아니라, 일반 정부 권력의 속성에 공히 적용되는 것이다.
민주국가는 정부나 검찰, 법원이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 공권력은 최소한의 보충적 역할에 그쳐야 한다.(국가/정부 보충성 원칙) 공권력은 국민/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음으로써 약자를 보호할 수 있다. 정부 권력이 나서는 순간, ‘소수 보호’라는 명분은 힘없는 약자가 아니라 강한 소수의 보호로 변질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 같은 원리로, 약자는 검찰에 의해 보호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사례들이 증명하듯이, 검찰이 권력편향적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재명의 주장과 달리, 검찰이 수사권을 완전 박탈 당해서 약자가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박탈하지 않으면, 약자가 다시 도탄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없지 않다.
위 둘째, 검찰 권력을 다 뺏으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이재명의 오지랖 넓은 우려이다. 이 말은 두 가지 오류를 깔고 있다. 하나는 검찰이 권력을 다 뺏기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공소청으로서의 검찰은 여전히 강력한 독점의 권한을 가지고 경찰의 수사를 좌우할 수 있는 무기를 들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기소독점, 영장청구독점, 기소편의주의 등의 권한이 그러하고, 이런 독점적 권력으로 인해 검사와 경찰 간에는 여전히 상호견제가 원활하지 못할 전망이다. 이재명이 검찰 권력을 ‘다 뺏기면’이라고 전제를 깐 것은 엄살이다. 그 엄살은 검찰의 권력을 다소간 존속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오류는, 갑자기 변하는 제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검찰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이재명이 말한 것이다. 그러나 공백을 메꾸는 주체로 검찰이 다시 등장해야 할 하등의 필연적 이유가 없다. 방법은 구하면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성에 적어 자체 개선이 불가능해 보이는 검찰을 다시 대입할 수는 없는 것이겠다.
민주 시민의 권리는 정부의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권력이 약화할수록 더 강화된다. 민주시민은 스스로 경찰이 되고, 검찰이 되어야 한다. 집단지성뿐 아니라, 집단으로 뭉쳐 타인구조를 실천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식민지배와 독재의 잔재는 여전히 시민 상호간 타인구조를 금지하고 있고, 그 대신 공권력을 시민 위에 군림하도록 올려놓았다.
시민은 서로 돕지 못하도록 하고, 개개인은 모래알같이 뿔뿔이 흩어져, 원칙적으로 자기 관련 일에만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호연대에 의한 강력한 저항권 행사를 애초에 봉쇄하는 것이다. 검찰 보완수사권의 ‘예외적’ 허용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뭉쳐 정부 공권력의 남용에 저항할 수 있도록 타인구조를 강화함으로써, 제도를 다시 짜야 하는 것이겠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등 공권력의 가부장적, 온정적 시혜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자 시민은 시민 연대에 의해 공권력에 대한 저항권을 강화함으로써 보호될 수 있다. 공권력은 언제나 양날의 검(칼)이다. 헌법의 요체는 공권력의 오남용으로부터의 시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점을 새길 필요가 있겠다.
위 셋째, 소수 검사(이재명에 따르면 많아야 ‘10%나 될까’)가 잘못된 것이지 다 그런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정성호와 이재명의 황당한 주장은 민주적 권력통제의 원칙과는 거리가 있다. 이재명에 따르면, 국민이 불이익받기도 하지만, 이게 검사 등 구성원 모두가 그러는 게 아니며, 법원의 집단지성과 시스템에도 믿을 만한 게 있어 언제나 잘못된 수사, 판결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위 넷째,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 ‘예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이 생각한 ‘예외’의 안전장치는 검찰수사권 완전폐지가 아니라 ‘예외’를 두는 것이다. 그 목적은 “정의롭고 남용 가능성 없는 안전한 검찰수사제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재명은 말한다. 이 말은 ‘예외’를 두는 것이 “정의롭고 남용 가능성 없는 안전한 검찰수사제도”를 향한 주춧돌이 된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런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재명의 발언은 비현실적 이상을 현실인 것처럼 끌어대는 신기루 같다.
“정의롭고 남용 가능성 없는 안전한 검찰수사제도”는 이재명이 생각하는 ‘예외’의 규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의롭고 남용 가능성 없는 안전한 제도” 자체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없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제도를 만들려고 하는 이재명의 시도 자체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 제도가 미비해도, 권력을 오남용하는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공정을 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에게 ‘예외적’ 보완수사권을 허용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권력도 잘못 행사할 때는 엄하게 처벌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경찰과 검찰 공히, 그 권력의 오남용에 대해 양해할 것이 아니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처벌만 엄하게 하면, 제도가 미비한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권력의 오남용에 대해서는 법조인 혹은 복잡 교묘한 법기술이 아니라 시민이 상식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
한편, 이재명은 구조와 인간의 부패를 혼동했다. ”문제점이 있는 것을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모두가 오염돼서 다 망하는 게 아니다“라고 한 것이 그러하다. 이재명이 잘못 이해한 것은 부패가 구조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오염되는 것은 사람이지 구조가 아니다. 어떤 구조에서건, 완벽한 구조는 있을 수가 없다. 법도 그러하다. 완벽한 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패는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무관하게 사람이 하는 수작에 기인한다.
부패를 구조의 탓으로 돌리는 것 자체가 사람에 대한 관리를 간과하겠다는 뜻이다. 제도, 구조, 법과 무관하게 부패는 발생하고 그 부패의 방지는 책임을 묻고 처벌을 강화하는 데서 가능한 것이다. 증거 조작 등이 논란이 되기까지에 이른 검찰을 처벌하는 제도 없이, ‘예외적으로’ 보완수사권을 줘야 억울한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이재명의 주장은 연목구어의 궤변이다.
더구나, ‘예외’를 위한 시도에 대한 경계가 단순히 기우에 그치는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실이 녹녹하지 않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에 따르면, 공소청으로 간판을 바꾸어 단 검찰이 막강한 검찰인력, 수사인프라 등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고 한다. 대검 과학수사부(법과학부로 이름만 바꾸고 그대로 유지), 포렌식센터, D-Net 등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황운하에 따르면, 검찰은 수사권은 폐지되었지만, 인력과 인프라를 그대로 가지고 있겠다는 것이며, 이대로 가면, 지금 잠시 견디기만 하면, 머지않아 검찰공화국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이런 검찰은 새로운 형사사법시스템이 제발 망하기만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황운하는 전망한다.(황운하 페북: https://www.facebook.com/100000156579979/posts/29002382749350226/?mibextid=rS40aB7S9Ucbxw6v)
위 다섯째, 이재명은 기간의 다소를 불문하고, 10월까지 남은 시간에, ‘예외’의 안전장치를 만들려고 하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할 전망이다. 이미 신년기자회견에서, 이재명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빌미로,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한 바 있다. 당(국회), 정부, 시민이 더 토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미 당도해야 할 결론을 제시한 것이다. 이른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를 인정하자는 것, “이번에 공소청, 중수청, 그거는 나중에 더 연구해야 한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이재명은 자기 뜻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흔히 ‘국민’을 내세운다. “국민들께서도 열어놓고 토론하시고, 그래서 정말 효율적이고 남용가능성이 없고 인권 보호와 피해자 구호에 도움이 되는, 정의로운, 남용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검찰수사제도, 기소제도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두 가지 허언(虛言)이 개재한다.
하나는, “정의롭고 남용 가능성 없는 안전한 검찰수사제도를 만들자”고 한 것이다. 어떤 제도도 완벽한 것이 없다. “정의롭고 남용 가능성 없는 안전한 제도”는 겸찰 뿐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서도 실현불가능하다. 이 같은 허황한 명분의 부작용은 기존 검찰조직 및 기능을 정당화하고 상당 부분 존치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의 토론을 하라는 것인데, 국민에게 결정권이 없으니, 결과적으로 그냥 들러리 서는 것이 된다.
이재명은, 의견이 불일치한다는 점을 빌미로,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다. 10월까지 ‘예외’를 인정하도록 국회의 수정입법이나 시행령을 통해서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복심이다. “정부도 위원회, 실무자 등이 갑론을박 하는 가운데 정부안(2차에 걸쳐 검찰보완수사권 등 그래도 존치)이 나왔고, 그래서 당과 논의하는데, 당(국회)에서도 아마 의견이 하나로 탁 몰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재명의 입장이고 전망이다.
여기에 이재명은 두 가지 단서를 더 붙인다. 하나는 감정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 둘째, 행정은 자기 주장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쓰면, 전자는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자는 것은 이성적 사고가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라는 것, 후자는 남의 의견도 고려하여 다소간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이 ‘남의 의견’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이현령비현령으로 객관적 잣대가 없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의 소신은 ‘예외’를 인정하자는 것이고, 이 같은 자기 주장은 도무지 남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으나, ‘남의 의견도 고려한 것’으로 포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의견’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다만 이재명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를 주저앉히는 데 이용되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이 되는 것이다. 자기 판단은 이성적이고, 다른 주장을 하는 이는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로 매도당하기까지 한다.
자기 주장대로 막 하면 안 된다는 점을 피력하면서, 이재명은 황당한 비유를 들었다. 행정과 정치를 대립 항으로 놓고, 행정은 정치가 아니라고 하는 비상식적 구분이다. 정치는 자기 주장 막 하면 되지만, 행정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재명의 이 같은 자의적 주장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지만, 뜻하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니다. 행정의 우두머리가 대통령 자신이므로, 자기의 뜻에 반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6.10일 정청래(민주당 전 대표)가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고 말한 것을 두고, “현 정권을 겨낭한 것이냐” 등 질타가 이어졌다는 말이 회자한다. 길고 짧고를 막론하고 ‘정권’ 운운하는 것 자체가 국민주권을 배반하는 것이다. 어떤 정권도 국민/시민의 뜻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국민은 토론만 하는 들러리가 아니라, 저항과 결정의 주체로서 서야 한다. 또 중앙집권이 아니라 지역으로 고루 권력이 분산된 정부는 ‘정권’이라는 단일체로 존재할 수가 없다. 다양한 지역 권력의 복합체로서 민주적 정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미화(민주당 최고위원 후보)가 시행령(정부)과 입법(국회)을 혼동해서, 최근 문제가 된 단일종목레버리지(ETF)가 정부 아닌 국회에서 통과된 법이라고 국회 탓하더니, 대통령 이재명은 행정은 정치가 아니라고 한다. 행정이 정치 아니면, 뭐란 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