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149) 핵심은 찐명, 반명 등 개인 성향이 아니라 정당공천권에 줄 서는 제도의 문제대통령 이재명의 ‘통합’, 김민석의 ‘당·정·청 일치’ 구호는 비민주적 전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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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 교수 ©부산포커스 |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났다. 대전에서 열린 전당대회에 대통령 이재명은 영상 발언으로 이제부터 통합해야 한다는 취지를 전했다. “우리 민주당은 하나일 때 가장 강했습니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지도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합니다”라고 한 것이다. 이재명이 좋아하는 통합의 주문에는 크게 세 가지 문제가 따른다.
첫째, 이재명이 통합해야 한다고 해서 국민 민중이 통합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도 ‘국민 민중’의 서사가 사라지고, ‘지도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된다고 했다. 한 사람이나 소수의 명령을 듣는 것은 민주가 아니라 전제적 전체주의이다. 통합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 자발적 상향의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명령하는 것은 민주가 아니라 독재이다. 국민주권의 나라에서 뭉치고 안 뭉치고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지도부’를 중심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위에서 통합하라고 주문했을 때, 그 통합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자발적 통합은 각 개인의 지향성이 그 기준이 된다. 예를 들면, 왜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반역자나 비겁한 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 마음으로 통합하여 퇴치에 힘쓰는 것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재명이 통합하라고 지시를 하면, 그 기준은 부득이 이재명이 원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셋째, 원래 민주는 통합이 아니라 다양성을 전제로 해서 성립하는 것이다. 각종 선거와 투표 행위는 통합과 무관하게, 각기 다른 지향성을 가진 이들이 과반수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재명이 주문하는 통합은 그 자체로서 비민주적, 독재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 통합은 이재명이 허언(虛言)으로 늘 외고 다니는 ‘국민주권’과는 괴리가 있다.
이재명 못지않게 이번에 당 대표로 당선된 김민석도 민주정치와는 담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외고 다니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 ‘당·정·청 일치’ 등의 구호를 보면 그러하다. 당은 목하 국회의 다수당을 구성하는 민주당을 뜻한다. 그 국회 다수당이 정(행정부), 청(청와대)과 한 몸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김민석에게는 입법부와 행정부 간 권력분립 개념이 애초에 없는 것이다.
김민석의 ‘당·정·청 일치’의 주문도 이재명의 ‘통합’의 주문과 똑같이 세 가지 문제점을 갖는다. 첫째, 그 일치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총리 혹은 당 대표가 아래를 향해 주문하는 것이다. 둘째, 그런 경우 그 일치의 기준은 무엇일까? 셋째, 민주는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일치’의 실천을 구호로 한 김민석은 부득이 다양성을 무시하는 비민주적 독재를 지향하는 것이다.
노무현을 버리고 떠난, 이른바 김민석 ‘배신’의 서사에 대해, 김민석의 친형으로 시민운동에 투신한 김민웅 목사가 자신의 페북에 다소간 김민석을 위한 변호의 글을 올렸다.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배신’이라는 말 한마디로 소멸되거나 짓밟히는 것은 온당치 못하며, 한 인간의 내면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민웅 목사는 핵심을 간과했다. 김민석의 문제는 개인적 ‘배신’으로 형용하고 말 것이 아니고, 또 지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발생, 진행 중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민석이 인기 떨어진 노무현을 떠나 다른 당을 만드는 데 동참한 것은, 쉽게 ‘배신’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형편에 따라 그렇게 옮겨서는 안 된다고 강요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 권력을 지향한 김민석의 비민주적 독선에 있다.
그 독선은 이번 경선 과정은 제쳐 놓고라도, 그 직전 총리로서의 행보에서도 상당히 가시화되었다. 김민석은 정성호(범무부장관)와 함께 검찰개혁을 지연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회자하고, 막판에 가서는 자신이 아니라 당 때문에 검찰개혁이 지연된 것이라고 오히려 자신을 변호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김민웅이 동생 김민석을 위해 말하는 바,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배신’이라는 말 한마디로 소멸되거나 짓밟히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라는 서사와 무관한 것이다. 목하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김민웅은 김민석을 향해, “하늘과 국민을 두렵게 여기고 받들며 매일 깊고 깊게 자성하면서 앞으로 나가야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부탁 겸 옹호의 변이다. 그런데 “국민을 두렵게 여겨야 한다”는 것은 이재명이 즐겨 쓰는 서사이며, 이런 서사는 흔히 허언(虛言)으로 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냥 부탁하는 것에 그치고, 국민을 두렵게 여기지 않았을 때에 대한 아무런 견제 장치가 제도적으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렇게 가다가, 대놓고 국민을 두렵게 여기지 않는 윤석열 같은 이라도 만나면, 그때는 속수무책이다.
이재명이 주문하는 ‘통합’과 김민석이 구호로 한 ‘당·정·청 일치’는 비민주적 독재 지향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후자의 구호는 ‘당·정·청 원팀’을 내건 전임 민주당 대표 정청래와는 다소간 차이가 있다. 후자가 내건 ‘원팀(one team)’은 한 개 ‘팀’ 내부 수평적 관계의 구성원을 복합적으로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팀’은 의견의 일치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토론과 이견이 분출될 수 있고, 그런 가운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자발적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는 개념도 언제나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우선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의 차이를 찾을 수 있겠다. 첫째, 한편에 ‘통합’, ‘일치’를 주문하는 이들과, 다른 한편에 ‘팀’ 내부의 수평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이들 간에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에서 추진하는 방식이 같지 않다. ‘통합’, ‘일치’를 주문하는 측은 독선적 일인 명령체제를 지향하고, 구성원 간 수평적 ‘원팀’을 원칙으로 하는 측은 다양성, 민주적 의견 개진과 토론을 통한 의견 수렴을 전제로 한다.
민주당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찐명(친명)과 반명 담론이 득세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하는 이들은 ‘찐명’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반명’이라는 규정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재명 개인에 대한 추종 여부와 무관한 것이다. 전자는 절차상의 문제이고, 후자는 개인이 기호에 관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을 사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방법, 절차 등 제도적 문제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 서로 다른 개념으로 쓰이는 둘째 경우로서, 한편에, 다른 누구가 아닌 ‘이재명 정부’만 배타적으로 성공해야 한다고 보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재명뿐 아니라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죄다 성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다.
전자는 이재명을 신격화하고, 이재명 정부의 성공은 한번 임기로 모자라니 연임을 도모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후자는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죄다 성공해야 하고, 그 성공을 위해서 서로 협조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어느 특정인이 연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된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 배타적 신격화, 연임을 위한 개헌의 담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비민주적 독선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당·정·청 일치’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구호로 내건 김민석이 많지 않은 표 차이로 당 대표로 당선되는 과정에서 들리는 잡음은 크게 네 가지로 수렴된다. 첫째. 선호투표제 도입을 위해, 다수결도 아닌 소수결로, 당규를 고치고, 현직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받기 위해 대거 김민석에게 미리 줄을 섰다는 것, 둘째, 광주, 전남 등 호남지역 투표에 임박하여 김민석을 미는 대통령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서둘러 진행하고, 또 김민석은 대통령과 호흡이 맞지 않은 사람이 당 대표가 되면, 전북에서 정부가 추친 계획에 있는 무슨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거나 하는 것. 셋째, 김민석이 민주당 당내 혹은 상대 후보가 신천지와 연관이 있다고 몰아세웠고, 그런 김민석 자신은 교회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교회와 신천지 간의 갈등구조를 이용했다는 말이 회자하는 것. 넷째, 김민석이 친명, 반명으로 민주당을 갈라치기했다는 것 등이다.
이번 민주당 당 대표 선거가 관권, 금권, 협잡 등으로 얼룩졌다고 하고 그 중심에 선 개인을 비난하는 글들이 쇄도한다. 그러나 개인을 탓하기 전에 그 같은 극한의 분열로 치닫게 되고, 왜 대거 현직 국회의원들이 김민석에게 줄을 섰던 것으로 회자하는지 등, 그 근원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 근원에 대한 반성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집중된 권력구조가 낳는 폐해이다. 재선, 3선 자꾸만 공천받아 여의도를 떠나고 싶지 않은 의원들이 정당 공천권에 목줄이 매여 거수기로 전락한 것도 권력 집중이 낳은 부산물이다. 대의원 아닌 민주당원의 1:1표제같이, 국회의원도 국민들이 순서를 정하도록 정당공천권을 폐지해야 한다.
둘째, 민주적 절차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재명 정권의 성공’을 기대하는 이들에 대한 우려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를 포기하고, 남의 손을 빌어 얻어먹으려는 이들은 결과적으로 권력의 노예가 될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정희 개발독재가 국심한 빈부의 차이를 초래했고,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큰소리쳤던 이명박이 나라 곳간을 거들낸 경험을 벌써 망각한 듯하다. 사람이 다 같은 것은 아니겠으나, 공권력에 대한 주권자 국민의 감시와 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민주정치의 기초이다.
셋째, 금권선거에 취약한 배고픈 민중 자신들에 대한 반성이다. 먹을 것이 생길 것 같은 전망 앞에서, 절차의 무시, 중앙집권의 강화 등 비민주적인 권력의 행보 앞에 민중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간간이 목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경선 과정이 그러했던 것으로 회자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말 올해 초에 걸쳐, 이재명이 지역 행정통합의 화두를 들고 나왔을 때도 그러했다.
민선인 광주시장 강기정, 전남도지사 김영록은 중앙 국회로 올라와서, 시·도 의회도 통과하지 못한 광주·전남 행정통합법을 통과시키는 데 협조했다. 정부에서는 1년에 5조, 4년에 20조 정부 보조금을 미끼로 내세웠고, 그때 김민석은 수차 광주·전남을 방문하여 행정통합을 종용했으며, 거기에 당시 국회위원이며 현 통합행정 단체장이 된 민형배가 협조했다. 이 같은 중앙 행정부와 입법부의 월권을 목도하면서도, 다수 지역 시민단체 및 민중은 장밋빛 20조 보조금 전망 앞에 침묵했다.
권력의 독재화는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당장에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이재명 등, 개인을 욕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정자와 국민 민중에게 같은 부담의 책임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나물에 그 밥, 민중은 자신에게 맞는 지도자를 갖게 되는 것이고, 위정자는 국민 민중의 수준을 반영하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