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4년 중임제, 약방 감초같이 안 끼이는 데가 없어
국민은 각기 개체로서 자유로우며, 대통령에 의한 ‘통합’의 대상이 아니다
이재명은 윤석열이 계엄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자찬
계엄의 위험이 예측되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이재명의 부산역 유세(2025.6.1.) (사진 출처: JTV뉴스에서 화면 갈무리)
이낙연(전 민주당 대표)이 김문수의 국힘당에 대해 지지, 협조 선언하면서, 그 취지로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하겠다고 한다. 좀 이상한 것이, 4년 중임제 개헌은 구태여 이낙연이 나서지 않아도, 또 민주당 대표 및 총리를 지냈던 이가 구태여 국힘당과 손을 잡지 않아도 보편화된 담론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과반수가 여기에 찬성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한 표가 소중한 이 중차대한 시점에 이낙연이 나와서 그것도 국힘당과 연대를 표방하는 자리에서 기어코 4년 중임제 개헌을 화두로 내걸었을까?
정치권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목매고 있는 이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이낙연뿐 아니라 며칠 전에 이준석(개혁신당 대표)이 4년 중임제 개헌을 입에 올렸고, 김문수, 이전으로 올라가면, 윤석열, 김진표(민주당 충신 전 국회의장), 우원식(민주당 출신 현 국회의장)이 그랬고, 이재명도 마찬가지이다. 이재명(민주당 대표)은 5년 단임제가 기괴한 제도라고 폄훼하기까지 했다.
1987. 6월 민주항쟁에 의해 정초된 1987년 헌법의 거의 유일한 성과가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인데, 이재명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직선제는 괜찮은데, 5년 단임은 ‘기괴’한 것이라서, 4년 중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은 기괴한 제도로 탄생한 대통령이 되어버린다. 그들이 무언가 다 이루지 못한 것은 수구 보수의 반동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가 4년 중임이 아니라 5년 단임제였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이 아니라 4년 중임이 되면, 대통령이 좀 더 민주정치를 잘 펼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이재명의 희망인 것 같다.
그러나 4년 중임제는 양날의 칼이다. 이재명 같은 이가 나오면 그 중임의 제도를 선용할 수도 있겠으나, 윤석열 같은 이가 나오면 폭망이다. 상식으로, 중임하기 위해서 현재 가지고 잇는 권력을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이용, 악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임제가 없으니, 장기집권 하겠다고 아예 12.3 내란을 일으켜 버렸다. 그렇게 불법으로 총을 들이대려 하는 마당에, 4년 중임제였으면, 중임하기 위해 합법을 가장하고 별의별 짓거리를 다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점 반성이 필요하다. 첫째, 대통령 4년 중임제 화두가 약방의 감초같이 안 끼이는 데가 없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내각제와 4년 중임제(김진표, 이낙연, 우원식, 국힘당), 국민 발안제와 4년 중임제(시민단체)를 각기 짝으로 맞추더니, 이번에 이재명은 4년 중임제를 결선투표제와 짝을 맞추었다.
그런데 내각제, 국민발안제, 결선투표제는 사실 4년 중임제와 무관하게 시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대통령 임기와 무관하게, 각기 실행할 수가 있다. 내각제, 국민발안제, 결선투표제는 각기 5년 단임제와도 어울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4년 중임제만 말하기가 괜히 허(虛)하니까, 다른 것을 하나씩 끼워넣는 꼴이다. 5년 단임, 4년 중임제 자체로서는 어느 것이 딱 부러지게 좋다 나쁘다 하기 곤란한 것이, 다 장단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각제와 국민발안제는 서로 성격이 상반한다. 내각제는 대통령을 제치고 국회에서 뽑는 총리가 실권을 가지는 것이니 국회에서 해먹겠다는 것인 반면, 국민발안제는 그 국회 위에서 국민이 감독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재명 등 여야가 공히 말하는 결선투표제도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무관하다. 5년 단임제나, 그 외 국회의원, 지방의원, 자치단체장 등 모든 선거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서로 연관성 없는 개념들을 하나씩 짝지워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들고 나온다는 사실은 4년 중임제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한다. 핵심은 내각제냐, 국민발안제냐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안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반한다. 여기에 대통령이 4년 중임이냐 5년 단임이냐 하는 것은 곁다리이다.
4년 중임제가 물론 완전히 곁다리인 것은 아니고, 경향성을 가진 것이다. 일단 중임이 되면, 당해 정권이 정권의 연장, 중임을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국민의 정치 발언권이 줄어들고, 위정자의 농간 영역이 더 커지는 결과를 낳게 될 전망이다. 가능한 한 국민을 배제하려는 것은 위정자의 독재를 지향한 것이다.
이재명이 부산역에서 선거유세를 했다.(2025.6.1.) 개요 몇 가지를 추리면, “국민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정치”, “정치가인 머슴은 빨간 색, 파란 색으로 나뉘어질 수 있지만, 국민은 편을 나눌 수 없는 하나이다”, “정치가가 국민을 편가르기 하면 안 되고 통합해야 한다”, “정치가가 잘하면 (국민이) 지지 응원하고, 못 하면 혼내고, 자르고 해야 한다”, “다음에 표로써 응징하면 된다”, “나(이재명)는 정확하게 (윤석열이) 계엄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번에는 속지 말고 잘 뽑자” 등이다.
여기에 다시 몇 가지 개념의 모순 및 한계를 지적할 수 있겠다. 첫째, 머슴인 정치가는 편을 나눌 수 있는데, 국민은 편을 가를 수 없다는 정의이다. 그렇지 않다. 정치가 간 갈등은 바로 국민 간에 존재하는 이해 충돌을 반영한다. 빈부의 차이, 기득권의 향유자와 그에 배재된 이는 국민 가운데 모두 존재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국민과 정치가가 각기 해묵은 불평등 기득권에 편승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로 첨예하게 구분되며, 그런 점에서 양자 간에는 차이점이 없다. 그러나 이재명은 엉뜽하게 국민과 정치가를 서로 질이 다른 것으로 구분하고, 마치 국민 간 갈등의 원인이 정치가에 있는 것으로 갈등 진원지를 잘못 설정했다.
둘째, 이재명은 대통령의 역할을 ‘통합’으로 규정한 데서 오류를 범했다.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국민은 근원적으로 ‘통합’될 수가 없다. 여기서 이재명은 대통령의 역할을 과대평가 했다. 정치는 ‘통합’이 아니라, 서로의 갈등을 조정하되, 합의가 안 되는 경우 다수결로 결정하는 일이다. 그 다수결은 통합이 아니며, 다수결로 결정하는 제도로서의 ‘민주’는 ‘통합’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는 ‘통합’ 이전에 ‘자유’에 뿌리를 두는 것이다. 반면 윤석열이 입에 달고 다니던 ‘통합’은 전체주의적인 것이다.
셋째, 이재명은 정치가가 잘못 하면 국민이 ”혼내고 자르고 해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그 방법은 다음 선거에서 ‘투표로 응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생각한 주인으로서의 국민은 투표하기를 기다려 ‘응징’하는 것 이외의 수단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속지 말고 잘 뽑자“고 한다.
이런 서사(敍事)는 그 자체로서 모순을 지닌 것이다. 한편에 ”국민이 잘못한 정치가를 응징“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편에 ”속으면 안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속으면 응징을 할 수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거는 불완전한 제도이다. 안 속으려 해도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속게 된다. 그 속음은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다.
이재명은 국힘당을 두고, ”제멋대로 하다가 선거철만 되면 집단으로 모여 '잘못했습니다'하고 머리 조아린다“고 나무란다. 국힘당의 이 같은 연출은 국민이 자꾸 속아 넘어가기 때문에 발생한다. 부산역 유세장에서 이재명이 ”이번에는 속지 말자“고 당부했다. 이번에는 12.3. 내란 끝이라 어떨지 알 수 없으나, 다음에는 또 속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4년, 5년을 건너서 다시 투표한다면 그때도 안 속는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사람 뽑는 그런 투표만 가지고, 잘못하는 정치가를 벌하는 것만으로는 민주정치를 구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속았을 때에 바로 그것을 만회하고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그를 뽑았던 국민이 다수결을 통해 표현되는 일반의지로서 당장에 ”혼내고, 자르고“ 해야 함을 말한다.
이재명은 윤석열이 계엄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정확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12.3 계엄으로 현실화할 때까지 어떠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 이번에 드러났다. 이재명은 자기의 예측이 정확했다는 점을 자랑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런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인 국민은, 대통령이 ‘통합’해야 하는 대상으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각기 자유로운 주체이다.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고, 그 국민의 의지는, 시비를 불문하고, ‘다수결’로 표현될 뿐이다. ‘다수결’로 표현되는 일반의지로서의 국민의 뜻은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국민이 다수결로 뽑은 대통령 임면의 거취는 위법, 불법 여부로 가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을 뽑을 때, 그이가 합법적이기 때문에 뽑은 것이 아니듯이, 합법성 여부와 무관하게 축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를 잘 하라고 뽑은 이가 정치를 그르칠 때는 그러하다. 민형사를 제외한 대통령으로서의 지위에 관한 한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문을 두드릴 일이 아닌 것이다.
법은 물론 3권 위에 존재하는 국민은 대통령 등 공직자를 뽑기만 할 것이 아니라, 위험이 현실화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권능도 함께 가져야 한다. 이것은 국민발안제도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부의권을 국민이 쟁취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